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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조각을 깎는 시간-로스트 왁스 기법

로스트 왁스 주조, 형태를 만드는 기술

작은 파란 블록 하나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겉보기엔 아무것도 아니다. 
플라스틱 같은 재질, 장난감처럼 가벼운 무게. 하지만 작가가 손에 칼을 쥐고 다가오는 순간, 
이 블록은 더 이상 ‘덩어리’가 아니라 작품의 원형이 된다. 


“왁스 조각은 항상 ‘없어질 것’을 전제로 시작해요. 사라질 걸 알고 깎는 조각이죠.”


주얼리 공방에서 가장 조용한 시간은 이 왁스 조각의 시간이다.
 망치 소리도, 불꽃도 없다. 대신 숨과 칼날 소리만 있다. 
왁스에서 금속으로, 그리고 다시 형태로. 로스트 왁스 주조(lost-wax casting)는 이름부터가 운명적이다.
‘왁스를 잃는다’는 말 그대로, 형태를 만드는 재료가 공정의 마지막엔 온전히 사라지는 방식이다.



1. 왁스 조각

  • 왁스 블록 또는 왁스 튜브를 준비한다.
  • 전용 조각칼, 버(버링 툴), 줄 등을 이용해 형태를 깎고 파고 다듬는다.
  • 이 단계에서 이미 완성된 주얼리의 실루엣, 두께, 착용감을 모두 계산한다.

핸드크래프트 주얼리 제작 과정 | 왁스 조형



2. 주조 준비

  • 완성된 왁스 원형에 ‘주입 통로’가 될 왁스 막대를 연결한다(스프루 작업).
  • 이를 금속 링(플라스크)에 고정하고 석고나 주조용 몰드 재료를 부어 굳힌다.

핸드크래프트 주얼리 제작 과정 | 주조 준비



3. 왁스의 소멸

  • 플라스크를 가열하면 몰드 안의 왁스가 녹아 빠져나간다.
  • 빈 공간이 생긴 자리에 나중에 금속이 들어갈 준비가 끝난 셈이다.

핸드크래프트주얼리 제작과정 | 왁스의 소멸



4. 금속의 주입

  • 녹인 금속(은, 금, 황동 등)을 그 빈 자리로 흘려보낸다.
  • 식히고, 플라스크를 깨고, 몰드를 제거하면 비로소 금속 형태가 드러난다.

주조 기법 핸드크래프트 제작 과정 | 금속의 주입



왁스는 이 과정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남는 건 금속으로 재탄생한 한 번뿐인 내부 구조와 표면뿐이다. 
로스트 왁스 주조가 흥미로운 이유는, 이 기술이 조형 감각과 착용감의 감각을 동시에 요구하기 때문이다. 
왁스를 깎는 일은 조각에 가깝다. 
하지만 이 조각은 탁자 위에 세워둘 조각상이 아니라, 귀와 손가락, 목과 옷깃 위에서 움직일 오브제다.
그래서 작가들은 질문을 반복한다.


  • 이 정도 두께라면 하루 종일 손가락에 끼고 있을 수 있을까?
  • 귀에 걸렸을 때 무게중심은 어떨까?
  • 머리가 긴 사람이 착용해도 걸림 없이 흘러갈까?


왁스를 미세하게 더 깎느냐, 남기느냐의 차이가 완제품에서의 균형과 강도, 착용자의 경험을 바꿔 놓는다. 
칼날이 지나간 자리는 그대로 복제되지 않는다. 
왁스 특유의 결, 실수, 손의 리듬까지 금속에 전사된다. 
그래서 로스트 왁스 주조로 만든 주얼리는 종종 다소 불균질하고, 그 덕분에 손맛이 느껴진다. 
그 불완전함이 이 기법의 매력이다.



로스트 왁스 주조는 특히 유기적인 형태에 강하다.

  • 물방울이 떨어져 퍼지는 순간을 멈춘 듯한 곡선
  • 손으로 비비 꼰 듯한 비정형의 링 구조
  • 마치 돌이나 뼈, 가지를 그대로 본뜬 듯한 형태


왁스를 직접 깎는 방식은, 판재와 선재를 중심으로 한 전통 금속공예와 다르다. 
판과 선으로는 만들기 힘든 볼륨과 덩어리를 비교적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점은 표면이다. 왁스를 얼마나 매끈하게 다듬느냐, 혹은 거칠게 남겨두느냐에 따라 표면의 질감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모든 것은 금속이 되기 전에, 왁스 단계에서 결정된다.


  • 마치 오래된 유물처럼 러프한 텍스처
  • 유리처럼 매끄럽게 흐르는 빛의 반사
  • 돌기, 홈, 패턴이 반복된 촉감적인 표면



전통 주조에서 컨템포러리 주얼리까지

주조는 매우 오래된 기술이다. 고대부터 금, 청동, 철의 도상을 만들던 장인들은 
이미 비슷한 방식으로 금속을 녹여 형태를 얻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로스트 왁스 주조는 조금 다르게 작동한다.


  • 디지털 조형 + 왁스 출력

    •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디지털 상에서 설계한 모델을
      직접 왁스로 출력해 주조에 활용하기도 한다.
    • 손으로 깎기 힘든 구조적인 패턴, 정확한 치수의 기계적인 폼도 구현 가능하다.
  • 왁스 조각 + 수공 디테일

    • 기본 구조는 3D로 만들고, 마지막 디테일은 손으로 추가하는 방식도 늘고 있다.
    •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새로운 형태의 공예다.


CRFT가 주목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기술은 진화하지만, 최종적인 형태와 감각을 결정하는 건 여전히 사람의 손이라는 사실. 
왁스를 깎는 손의 리듬, 실수를 수용하는 태도, 작은 결 하나까지도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감수성이
동시대의 로스트 왁스 주얼리를 공예로 만든다.


CRFT 큐레이션: “사라지는 재료로 만든, 남는 감각” 
CRFT에 소개되는 작가들의 로스트 왁스 작품을 보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기류가 있다.


  • 균질하지 않은 링의 두께
  • 살짝 일그러진 타원형
  • 완벽하게 대칭적이지 않은 표면


이소리 작가 핸드메이드 링 수제 반지 메탈 링 2


이소리 작가 : Melt Ring-2 > 더 알아보기



금속공예 서예슬 작가 | 핸드크래프트 이어링 | 수제 귀걸이


서예슬 작가 : 깃털 이어링 > 더 알아보기



이 작은 차이들이 착용했을 때 유난히 자연스럽다. 
손가락, 귀, 목의 곡률에 따라, 금속이 몸과 함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이것은 대량 생산 금형으로는 얻기 어려운 감각이다. 
수천 개의 동일한 형태 대신, 
손이 직접 깎은 하나의 형태가 가진 공기와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기 때문이다.


CRFT는 이 ‘사라지는 조각’의 과정을 이해한 후 주얼리를 바라보길 제안한다. 
단순히 예쁜 반지가 아니라, 한 번뿐인 왁스 조각이 남기고 간 흔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보면, 
당신의 손가락 위의 금속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에디터 정재경 BY CR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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